≪떠오르는 숨≫ 출간파티 축하 편지: 윤원
2024년 7월 25일 목요일
≪떠오르는 숨≫ 출간 파티에서 윤원 낭독
안녕하세요. 저는 보영이 친구 윤원이라고 합니다.
<떠오르는 숨> 의 각 장은 검스가 쓴대로 일종의 명상 프롬트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명상이라고 하면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가만히 앉은 자세에서 눈을 감고 어딘가에 집중을 해서 마음을 고요하게 만드는 것인데요. 제가 얼마전 한 명상가와 이야기를 나누다 높은 집중을 하는 종류의 명상이 반드시 좋은 명상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도 아직 체득하지 못한 지식이지만 제가 생각한 이 말의 뜻을 공유해보자면, 어떤 정신적 집중의 상태에서는 몸이 완전히 잊혀지는 방식으로 의식의 세계에만 빠질 수 있게 된다는 말 같아요. 다시 말하면, 사실 좋은 명상은 몸을 잊는 방식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몸의 리듬을 맞추는 것, 그렇게 지금 이곳에 존재함으로써 어떤 고요를 경험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명상은 마음의 수련인 만큼이나 몸의 수련입니다.
검스가 이 책의 각 장을 연속적으로 모두 읽힐 하나의 서사로 생각하지 않고 명상을 위한 조각들로 구성했다는 점은 이런 측면에서도 중요합니다.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지식은 그저 인간을 해양 포유류, 혹은 그 반대로 비유하거나 환유를 통해 서로에게서 가르침을 얻으려는 종류는 아닙니다. 원서의 부제였던 “Black Feminist Lessons from Marine Mammals” 가 해양 포유류’에게서 배우는’ 흑인 페미니즘이 아니라 해양 포유류’의’ 흑인 페미니즘이라고 번역된 것도 이런 이유인 듯합니다. 검스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자신의 상처 많은 몸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몸을 가지고 헤엄치는 세상 또한 전혀 다른 방식으로 느끼길 기도하며 문장을 씁니다. 다시 말해, 검스가 이 책을 통해 잣고 있는 것은 흑인 페미니스트의 인식론에만 그치지 않는 몸 경험 그 자체입니다. 검스가 책 내내 부르는 “사랑하는 당신"은 독자이기도 하고 남방큰돌고래, 줄박이돌고래, 카리브해 몽크물범이기도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며, 고래들의 이름으로 불리는 동안 저는 제 몸을 고래의 것처럼, 제가 사는 이곳을 나와는 “상관없이 온도가 변하는" (90) 물속이라고,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어떤 순간들은 더 가깝게 느껴지고, 다른 순간들은 머리로는 알겠지만 감각으로는 전혀 모르겠기도 했습니다. 예컨대, 저는 상처를 통해 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하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검스가 “당신이 나를 알 수 있는 가장 편리한 방식이 내 상처일까요? 왜 상처는 내가 나 자신을 알게 되는 방식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걸까요?” (92)라고 물을 때나, “비명에 대한 사랑으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목격에 대한 사랑으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너무 복잡해 내가 이름 붙일 수 없는 너무 오래되고 깊은 사랑으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108) 라고 말할 때에는 마음 깊은 곳에서 이 문장들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검스가 점박이돌고래의 잠행능력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내가 아는 게 무엇일까요? 은신을 압니다. 슬픔, 불안, 수치심으로 약화되지 않은, 불투명한 이미지를 만드는 일을 알고요. 적어도 나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여러 번 모습을 드러냈고, 그렇게 해서 당신으로 하여금 내가 여기에 홀로 존재한다고 생각하게 했습니다. 유령의 도움 없이도, 그 어떤 일에도 겁에 질리지 않은 채로요. 들키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발견되지 않는 거죠.” (93) 라는 부분을 읽으면서는 제 자신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방법을 제가 너무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이 부분이 블랙페미니즘을 통해 제가 가장 새롭게 배우고 있는 해방의 모델이기도 한데요, 저는 인류학을 하면서 투명하고 자세하게 맥락을 공개하고 그럼으로써 말하지 못했던 것을 말하는 것, 말하자면 서발턴이 말하는 것을 해방의 유일한 모델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많은 블랙 페미니스트들은 fugitivity (은신) 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해서, 완전하게 폭력적인 백인들의 세상에서 벗어나서, 존재하되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 해방의 시공간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같은 말을 듣는다 해도 완전히 다른 몸을 갖고 있지 않으면 경험할 수 없는 지식,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공간, 행간을 통해서 그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해방의 에너지와 같은 것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검스가 자신의 은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얼핏 비약으로 보일 수도 있는 이 책 문장들의 행간을 어떻게 해방의 기획 그 자체로 읽을 것이냐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검스가 호명하는 몸이 되어가고, 또 그 몸이 되어서야만 헤엄칠 수 있는 물속으로 초대를 받은 것이지요.
검스가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은 이 책이 자신이 혼자 완성해 낸 지적 작업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검스는 책을 위해 생각하고 경험하고 글을 쓰고 출판하는 동안 자신과 지적, 영적으로 대화를 나눈 사람들의 이름을 모두 책 속에서 부릅니다. 우리가 익숙한 각주로 레퍼런스를 다는 방식이 아니라 그들이 어떤 친구이고 그들과 어떤 사랑을 나누었는지를 말하면서요. 저는 이것 또한 최근의 블랙페미니스트들의 저작에서 찾아볼 수 있는 중요한 인용 실천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인용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지식 권력을 재생산하고 자신의 위치를 정치적으로 드러내는 학계의 오래된 관습입니다. 이러한 관습을 진짜 사랑하는 이들과의 대화로 대신한다는 건 나를 구성하는 세계를 용감하게 드러내보이는 행위이기도 하고, 함께 대화하는 사람을 향한 정성을 보여주는 행위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인용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사람들을 급진적으로 엮어내는 쓰기를 통해 다시 우리는 검스가 해양포유류들 또한 자신의 대화자이자 인용자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보영이 언젠가 공개해 주겠지만, 이 책을 번역하고 출판하면서 보영과 검스가 나눈 대화들도 바로 이러한 지적, 영적 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영이 원제인 Undrowned를 떠오르는 숨,이라는 시적 표현으로 옮기며 했던 고민들, 해양포유류 사전에 빼곡하게 인덱스를 붙여가며 블랙 페미니즘과 한국어의 접촉을 만들어낸 시간들을 통해 저도 처음 검스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보영은 이 책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사랑합니다" 라는 말이 독자들에게 가볍게 들릴까봐 걱정했지만, 저는 이 간단한 한마디로 표현되는 결코 간단치 않은 과정과 감정들이 이 책을 구성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하고 보영이 그 세계를 조심스레 우리에게도 열어주었다고 느낍니다. 떠오르는 숨의 출판을 축하하며, 보영에게 깊은 존경과 사랑을 보냅니다. 많이들 구매해주시고 사랑하는 친구분들께도 선물해 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