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숨≫ 협업자 소개 3. 주리

제가 처음 접한 알렉시스 폴린 검스의 책은 M Archive: After the End of the World였습니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또 활동을 하면서 흑인 페미니스트의 글을 접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거의 모른다고 말해도 될 정도로 그 계보와 맥락에 깊이 들어가 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최근에 와서야 흑인 페미니스트들의 작업, 특히 아무 기록이 남지 않은 곳에서 역사쓰기를 시도하는 글쓰기에 관심을 조금씩 두게 되었습니다. 기록이 없어도 폭력과, 즐거움과,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 기록 없는 시간을 어떻게 여기로 불러올 지를 두고 여러 실험을 펼쳐나가는 흑인 페미니스트들의 작업에 점점 더 흥미를 느끼며 만난 작가가 알렉시스 폴린 검스였습니다.

작년 겨울, 뉴욕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있는 친구 주리가 제가 이 책을 좋아할 것 같다며 Undrowned를 보내왔습니다. ≪떠오르는 숨≫의 원서입니다. 이전 작업과는 또 다른 면에서 좋았습니다. 누군가에게 아주 분명하게 말을 거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누가 읽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쓰는 글이 아니라 이 글을 읽고 있는 '나'를 향해 쓰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게다가 해양 포유류로부터 출발하는 흑인 페미니즘의 사유는 낯설어서 즐거웠습니다. 책을 만들고 나니 접촉면의 시작을 친구 주리가 열어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가볍게든, 무겁게든 여러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해 온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주리가 선뜻 이 책을 저에게 보내줬을 거예요. 이 책의 시작을 만들어 준 사람이니 편지를 써달라고 했습니다.

완전하고 미끄러운 사랑을 위한 이 세계 호흡법:
이 세계에서 우리가 계속 사랑할 수 있도록 바닷길을 열어주는 안내서

검스는 아버지를 잃고 그 2년 뒤부터 바다 포유류에 대해 쓰기 시작했대. 슬퍼서. 그리워서. 화가 나서. 미국 사회의 보건 체계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던 병으로 아버지가 너무 일찍 돌아가신 데에 충격을 받은 검스는 이 글쓰기를 시작해. 블랙 페미니스트로서, 어떻게 해야 스스로를 블랙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던 아버지를 잘 애도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이 고민은 과학 언어가 바다 포유류를 정의하고 묘사할 때 종종 저지르는 실수, 폭력적이고 얕은 묘사를 읽으면서 더욱 커지지. 검스는 주어진 대로만 생각하다 보면 노예제와 학살을 가능하게 했던 식민주의 사고방식에서 결코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을 블랙 페미니즘을 통해 배웠거든.

그런 검스에게 이 글쓰기는 하루 종일 우는 대신 내 안의 광활한 바다를 깨닫고, 슬픔이 있는 곳까지 천천히 떠오르는 시간. 익사하지 않기 위한 호흡법. 아버지와, 바다 포유류와, 자기 자신과 새로운 관계를 맺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하는 미끄럼질. 이 과정에서 검스는 자신과 바다 포유류 사이 구분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을 경험했대. 그리고 그 순간 모든 게 궁금해졌대. ‘너’에 대해 궁금해하다보니 ‘나’ 자신에 대해서도 궁금해졌고.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경이로워서 앞으로도 그 자리에 오래 머무르며 우리가 어떤 인간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계속 궁금해하고 싶대. 새로운 이야기를 수없이 빚어내면서 말이야.

내가 검스를 처음 만난 건 작년 겨울 대학원 세미나실에서였어. 모두가 둥그렇게 둘러앉아 있었고, 곧 터키색 카디건에 터키색 마스크를 한 검스일수밖에 없는 사람이 들어왔어. 좋아하는 작가를 직접 만났을 때 울렁이는 그 느낌 알지? 나는 그렇게 울렁이고 있었고, 검스는 활짝 웃으며 모두를 향해 이렇게 말했어. “자, 호흡부터 시작할게요. 한 손을 자기 복부에 올리고요. 숨을 크게 쉬면 움직임이 느껴질 거예요. 저와 함께 숨을 일곱 번 들이쉬고 내쉬는 동안 모두 본인의 호흡에 집중해 주세요. 자,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들이쉬고…” 순간, 편안함보다 짜릿함이 먼저 밀려왔어. 내가 언제나 세미나실과 뻣뻣하고 긴장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거든. 깊은 호흡 몇 번 만으로 그 관계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사실도.

일곱 번의 깊은 호흡 후에 검스는 이 수업을 누구에게 헌정하고 싶은지 모두에게 물었어. 검스는 이 헌정을 오라클(oracle, 신탁)의 일부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소중한 동료 생명체와 맺는 관계는 물리적으로 멀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야.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갈망하고 있기 때문이야.

나는 지금 이 편지 쓰는 시간을 <떠오르는 숨>을 번역한 너와, 곧 네 번역을 읽을 독자들에게 바칠게. 멀리서 보내는 편지를 맺기 위해 네 아름다운 언어를 일부 빌린다.

모든 곳에 있는 내 무리에게 사랑을 전합니다. 매끄러운 이와 매끄럽지 않은 이. 등을 드러내는 당신과 배를 드러내는 당신. 수면 위로 떠오르는 당신과 깊은 곳에 머무는 당신. 당신과 함께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주위를 둘러보고 잘 들어 보세요. 우리가 여기 있습니다. (80~81쪽)

주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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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숨≫ 출간파티 축하 편지: 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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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숨≫ 협업자 소개 2. 표지 사진 최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