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빙

≪레이빙≫
매켄지 워크 지음 | 김보영 옮김 | 류한길 해제 | 203쪽 | 18,000원

테크노 클럽에서의 레이빙 경험을 다룬 자기이론이자 오토픽션. 미디어 이론, 비판 이론, 상황주의자 인터내셔널에 관한 책으로 널리 알려진 트랜스섹슈얼 작가 매켄지 워크가 쓴 테크노 레이브에 관한 이야기. 트랜스섹슈얼인 저자는 몸과 정신의 해리를 경험하고 테크노 클럽에서도 이를 경험한다. 테크노 음악에 몰두하면서 겪는 육체와 정신의 몇 가지 상태를 개념화하고 이를 통해 테크노 레이브라는 ‘구축된 상황’을 분석한다. 테크노, 레이브, 트랜스, 해리, 흑인성, 약물, 그리고 이것들 위에 펼쳐진 다양한 욕망을 하나씩 살핀다.

저자는 나이 든 백인, 불구, 퀴어, 트랜스, 작가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다. 때로는 이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레이브에 뛰어들지만 “스스로에게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으로 레이빙을 시작한다 해도 여전히 하나의 특수한 자아”이다. 이 하나의 특수한 자아가 쓴 자기이론, 오토픽션이 독자와 어떻게 공진하는지를 살펴보자. 저자는 만약 이 책에 나오는 개념 혹은 경험과 읽는 이의 경험이 공진하지 않는다면 읽는 이가 자기만의 실천 과정을 통해 다른 개념을 만들어 보라고 제안한다. 자기이론으로 쓰인 이 책은 또 다른 이의 자기이론을 요청한다. 음악 속에서 흩어진 몸과 마음이 우리를 어떻게 연결하는지를 지켜보면서.

추천사

매켄지 워크가 책의 서두에 쓴 ‘감사의 말’을 읽자, 이 책이 앞길을 비춰줄 빛이 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되고 싶은 것이 생겼다. 레이버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약물 사용자와 트랜스 퀴어, 그리고 비정상 존재 사이에서 “안전과 어떤 가능성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까다로운 일을 하며 우리를 위한 상황을 만드는” 일에 헌신하고 싶다. 인권이 그런 거 아닌가, 더 잘하고 싶다.

이 책은 “레이빙 상황”을 그리지만 밤 열한 시에서 아침 여덟 시 사이에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많은 상황들을 은유한다. 그 밤은 삶을 견뎌야 하는 사람들이 탈진하기 위해서 모여드는 시간이다. 대개는 그러한 상황을 구축하기 위해서 노동하는 사람, 돈을 버는 사람, 돈을 쓰는 사람이 구분되는데 레이빙은 그저 “몸이 소리와 빛으로 잘게 부수어”지고, “자아가 흩어지며 다른 존재들 속으로 섞여 들어”가려는 탓에 할 수 있는 가장 덜 해로운 방식으로 노동과 돌봄이 공존하게 하려는 의지가 발동하기도 한다.

레이빙이 시작될 때부터 누군가에게는 어두운 지하나 거리의 레이브가 피난처이자 통치가 미치지 않는 곳이었다. 언제나 도망자들이 모이는 곳이 필요하다. 슬픔과 원통함, 분노 그리고 행복과 즐거움을 표현할 수 있는 시공간은 생존을 위한 것이다. 흑인들이 만들어낸 이 지하 세계를 트랜스 퀴어들도 점유한다.

가장 가까웠던 관계로부터, 세상으로부터 유리된 느낌을 받았을 때 책을 펼쳤다. 책을 덮으면 자아와도 잠시 분리된 채 비트에 박히고 싶은, 누구의 것도 아닌 몸이 된다. 다리 혹은 바퀴를 질질 끌며 레이브에서 돌아올 땐 몸마음이 달라져 있다.

- 나영정 (퀴어활동가)

레이브에서만 나타나는 나를 떠올린다. 댄스 플로어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의 머뭇거림이 비트 속에서 녹아내리고, 마침내 음악 속에서 길을 잃은 나. 그때 몸은 비트를 타고 흐른다. 한 번도 수치심에 굳어버린 적 없는 듯 파도치고 타오른다. 나는 그곳에 없으므로 그곳의 모두와 있다. 이는 매켄지 워크가 말하듯 일시적인 “상황”이다. 그리고 그 응축된 순간 속에 흐르는 정동에 대해 말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매켄지 워크는 레이브의 “옆으로 흐르는 시간”, 그곳에서 겹겹이 접혔다 펼쳐지는 환희에 대해 말한다. 그곳에서도 떨쳐지지 않는 쓸쓸함과 그곳에서야 형태를 얻어 일렁이는 욕망에 대해 말한다. 이윤을 추출하는 체계에서 비껴나 지도 밖을 탐험하는 불구의 몸들에 대해. 탈주한 흑인 노예와 퀴어와 이방인들이 마련한 세계에 대해. 이 나이 든 트랜스섹슈얼은 비트에 몸을 맡기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그건 오랜 시간 해리를 통해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레이브는 약속되지 않은 찰나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손짓한다. 그리고 『레이빙』은 음악 속에서 자신을 잃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이들, 음악 앞에 구멍이 됨으로써 나 자신에 접속하는 이들을 향해 열려 있다. 『레이빙』을 통해 더 많은 이들과 플로어에서 만나, 그 찰나의 가능성을 레이브 바깥의 세계로도 퍼트리게 될 것이라 믿는다.

- 문호영 (번역가, 작가)

우리는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거나 두려워한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행운아라서 그 세계를 직접 탐험할 수 있게 된다면, 동경과 두려움을 넘어서는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매켄지 워크는 바로 그런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반복되는 전자음에 몸을 맡기고, 깊고 낮은 울림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순간, 우리는 원초적인 감정, 종교적 체험에 가까운 감각을 경험한다. 그 안에서 자신을 온전히 마주할 수 있는 자유를 느끼고, 또 다른 비주류적 존재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기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계와의 관계를 새롭게 구성해 나간다.

“테크노 사운드 안에서는 더 환영받고, 덜 환영받는 인간의 몸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매켄지 워크의 이 문장은 우리가 진입하는 이 공간을 정확히 대변한다. 이곳은 규격화된 일상에 대한 저항이자, 생존과 회복의 가능성을 비주류적이고 비규범적인 환경 속에서 발견해 나가는 여정이다.

새벽의 레이브 클럽에서도, 일상의 공간에서도, 시위의 현장에서도 우리는 함께 꿈꾸고, 함께 살아간다. 더 귀한 몸도 없고, 덜 귀한 몸도 없다. 서로를 보살피고 존중할 때, 우리는 진정 자유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게 된다.

- 정글(트랜스패런트 기획자, 뮤지션)

3년 전 뉴욕 나우어데이즈(Nowadays)에 처음 갔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날은 미스터 선데이(Mister Sundays)라는 퀴어 이벤트가 열렸는데, 입장 전에 사람 키만 한 크기의 안전과 상호존중에 대한 안내문을 읽어주고 그 안내문 내용에 동의하는 사람만 입장할 수 있었다. 댄스 플로어에서는 핸드폰을 사용할 수 없고 오롯이 음악에만 집중해야 한다. 사람들은 서로를 챙겼고 다들 비를 맞으며, 누군가는 우산을 격렬하게 흔들며 음악에만 집중했다. 서울에서 퀴어 파티와 콜렉티브를 운영하고 있던 나는 춤을 추는 내내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레이빙』은 레이브를, 특히 퀴어 트랜스여성으로서 경험한 레이브를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다루는 책이 아닌가 싶다. 춤을 추다가 마주하는 수많은 상황과 고민이 있다. 나의 정치와 욕구를 동시에 해소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것이 우리의 댄스 플로어다. 문화를 만들고 플로어를 지키는 사람들은 지나칠 정도로 많은 질문을 자신에게, 그리고 공간에 던지곤 한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잘 모르고, 또한 몰라도 된다. 누군가는 이러한 고민을 하며 당신과 물을 나눠 마시고, 키스를 나누고, 어느새 이 질문들에 대한 본인만의 해답을 댄스 플로어에 적용하고 있을 것이다.

현시점의 클럽 문화, 레이브 문화에 대한 책이 많지 않은 가운데 이 책이 번역된다는 소식을 들어서, 그리고 그것이 매켄지 워크의 책이라서 정말 기뻤다. 이 책은 우리의 문화만큼이나 정신없이 얽혀 있고, 반짝이고, 신선하다. 『레이빙』은 당신의 손을 잡고 레이브 한가운데로 이끌듯 저자의 생각 속으로 당신을 초대한다.

나는 이 책이 일종의 게이트웨이 약물(gateway drug)로 작용하길 바란다. 스티브 굿맨(코드나인), 줄리아나 헉스터블, 디포레스트 브라운 주니어를 포함한 많은 전자음악가들은 연구자이기도 하다. 다양한 음악가와 작가들의 책 그리고 레이브 공간과 음악가들에 대한 매켄지 워크의 서술 방식이 인상 깊은데, 이들에 대해서 더 찾아보는 것도 추천한다.

- NET GALA(뮤지션)

매켄지 워크는 약물과 춤이 밤새 이어지는 파티를 두 눈과 귀로 정치(精緻)하게 탐색하며, 이 파티를 구성하는 무수히 많은 상호작용, 몸짓, 의식에 주목한다. 워크의 통찰력은 곳곳에서 빛을 발하는데 가령 레이브를 일시적 친족을 구축하는 현장, 지루한 관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시공간 옆에 따로 마련된 주머니, 이미 이 행성에 함께 살고 있는 외계인들을 위한 축소판 고향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레이버들은 도시의 버려진 장소를 점유해 정체성이 용해되는 곳, 자기를 잃어버리거나 발견하는 방종의 구역으로 뒤바꾼다. 이 책은 무아지경에 가까운 독창성, 재기 넘치는 언어가 샘솟는 광경을 보여 준다. 이 책에 당신을 담그고 스피커 악마, 레이브 콘돔, 징벌자, 사이드체인 시간을 찾아보기를 권한다.

- 사이먼 레이놀즈(『레트로 마니아』 저자)

이 책은 페뮤니스트 선언이자 테크노 음악의 흑인성에 관한 논고이며 21세기 트랜스 윤리를 다룬 논문이다. 

- 커두어 에슌(『태양보다 더 눈부신: 소닉 픽션 모험』 저자)

매켄지 워크가 또 해냈다. 개인적인 여정을 통해 자본주의의 작동 원리부터 우리의 몸과 정체성이 근본적인 변화를 겪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의 토대를 심문하고 낱낱이 뜯어본다. 디지털 음악이 진화하며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재형성해온 경로가 궁금한 이들의 필독서다.  

- 폴 D. 밀러(a.k.a. 디제이 스푸키, 『리듬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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