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있는 시간과 꿈꾸는 시간 사이에
『깨어 있는 시간과 꿈꾸는 시간 사이에』
헤바 하이에크 지음 | 이명훈 옮김 | 17,000원
[책 소개]
저자 헤바 하이에크는 가자지구에서의 어린 시절과 그곳을 떠난 뒤의 삶을 오가며 팔레스타인 여성의 기억과 정체성을 그려낸다. 짧은 장면과 기억의 파편을 이어 붙이는 방식으로 가족, 우정, 사랑, 이주, 상실, 점령과 폭력 아래의 일상을 섬세하게 풀어낸 자전적 산문이다.
영국 런던에 살고 있는 화자는 가자지구에서 함께 살았던 가족, 친구들, 집과 거리, 음식과 꽃의 냄새, 팔레스타인 아랍어로 나눈 대화를 떠올린다. 그 기억 속에는 할머니와 어머니, 이모와 고모, 사촌과 친구들이 있고, 그들의 농담과 잔소리, 사랑과 갈등이 있다. 동시에 검문소와 봉쇄, 폭격과 죽음, 이별의 기억도 겹쳐 있다.
이 책은 팔레스타인을 고통과 학살의 이미지로만 보여 주지 않는다. 뉴스의 헤드라인 뒤에 가려진 일상의 시간, 누군가가 자라고 사랑하고 싸우고 미래를 상상했던 삶의 구체적인 모습들을 드러낸다. 화자에게 기억은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 장소가 아니라, 떠나온 고향을 다시 마음속에 기르고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는 온실과도 같다.
팔레스타인이라는 정체성에 의해 규정되고 상처받으면서도 동시에 그 정체성을 통해 자신을 만들어 가는 한 소녀의 성장기를 따라가며, 기억하고 이야기하는 일이 어떻게 하나의 장소와 삶을 계속 살아 있게 하는지 보여 준다.
책 뒤표지의 꽃은 재스민의 한 종류인 삼박 재스민이다. 삼박은 이 책의 원제에 들어갈 만큼 저자에게 각별한 꽃이다. 달콤한 향기로 집 뒷마당을 가득 메웠던 꽃이자, 나무가 자생할 수 없는 환경에서도 삶을 창조하려 애쓰는 화자의 모습과 닮은 “회복력의 화신”이다. 이 꽃을 자기만의 온실에서 기르는 화자의 걸음을 따라 가자지구에서 자란 소녀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보기를 권한다.
[편집자의 말]
팔레스타인에 관한 책을 만들고 공부하고 연대활동을 하면서 늘 '잘 모른다'라는 위치에 놓여 있었습니다. 실제로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잘 모르니 알고 싶다'의 상태에 있는 것이 팔레스타인에 응답하는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알고 싶은 마음으로 하나씩 읽고, 보고, 듣고, 만나며 응답하려 노력하는 것.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팔레스타인 연대 활동의 방향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에 관심을 갖게 된 2023년 이후, 제가 본 팔레스타인 사람들, 팔레스타인에 관한 이야기는 고통으로 가득했습니다. 당연합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집단학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과 부상, 기아, 그런 단어를 지나야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 단어들에 얽힌 이야기 없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이 팔레스타인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살아남고 살아내어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들 또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이들이 전하는 이야기를 어떻게 듣고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가 우리에게 맡겨진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응답하고 싶은 이야기는 팔레스타인에서 자란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팔레스타인의 여자아이는 어떻게 자라는지 궁금했습니다. 나랑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 여자아이가 자라서 지금은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지 읽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선택한 책이 『깨어 있는 시간과 꿈꾸는 시간 사이에』는 입니다.
헤바 하이에크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이 책은 그곳에서 성장하는 여자아이들의 삶이 담긴 이야기입니다. 폭탄이 투하되면 책상 아래로 숨어 친구랑 몸 어디에 새로 털이 났는지 비밀스럽게 공유합니다. 폭격 때문에 때때로 희뿌연 먼지와 연기로 뒤덮이는 거리에서 이 여자아이는 남자아이들에게 러브레터를 받기도 합니다. 다른 여성들과 함께 제모를 하며 매끈해진 다리에 만족합니다. 살 빠지는 약을 먹다 장에 탈이 납니다. 사랑한다는 고백에 숯보다 더 빠르게 얼굴이 달아오릅니다. 저는 이런 모습, 뉴스에 나오지 않는 팔레스타인을 알고 싶었습니다.
2023년 이전에 쓰인 책이기에 그해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스라엘의 집단학살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 이후에 썼다면 아마 많은 고통이 더해졌을 것입니다. 2021년에 나온 이 책을 한국어로 옮기고 출간하게 된 건 학살로 인한 죽음이 없다면 그 자리에 삶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였습니다.
팔레스타인 땅에서 자라는 여자아이들이 지금은 무슨 이야기를 전하고 싶을까요. 무엇을 쓰게 될까요. 우리는 무엇을 듣게 될까요, 들어야 할까요.
헤바 하이에크는 이 책에 담긴 이야기가 가자에서 자란 여성들의 수백만 가지 기억 중 하나일 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제 하나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팔레스타인 여자아이의 이야기가 하나, 둘 더해져 아주 큰 소리로 들리게 되면 좋겠습니다.
팔레스타인에 해방을, 팔레스타인에 자유를.